정신건강의학과의원 초진 후기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생각해놓은 컨텐츠는 많았지만 직장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에게 글쓰기란 힘든 숙제였다. 오늘은 나처럼 정신과를 가야하나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정신과 초진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우선 내가 정신과를 가기 망설였던 이유. 혹시나 약물을 처방받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으면 상담을 권유할 것 같아서였다.
정말 증상이 심할 때가 있었는데 근래에는 그 정도로 심하진 않았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올 것 같았다.(그건 나의 착각^^...) 병원을 나서서 생각한 거지만, 병은 의사한테 진찰받는게 제일 빠르다. 망설일 시간에 병원 갔다오는게 마음 고생 덜하는 길인 것 같다.
대학 때 모종의 이유로 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다. 상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몇 백 시간의 상담을 채워야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생애 처음 상담사가 바로 대학원생이었다. 사람은 정말 착했지만, 온실에서 자란 장미같아서 과연 내 말을 이해할까 싶었고 의미없는 말만 늘어 놓는 것 같아 몇 번 안가고 그만뒀다. 그 때의 나는 정말 여러가지 일로 괴로웠는데 검사결과 자체는 멀쩡하게 나왔다면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상담센터가 엉망이었던 것 같다.)
이런 경험 때문에 상담은 아무 효과 없다고 생각했기에 약으로라도 어떻게든 해결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정신과는 동네 정신과라도 사람이 많다고 하더니 과연 월요일에 예약하려고 하니 금요일 딱 한 시간대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도 휴가를 낸 날이라 안도하면서 예약했다.
가기전에 오랫동안 상담, 약물치료를 해왔던 친구에게 증상이 심하지 않은것 같은데 가보는게 맞는 것 같냐고 물어보자 나의 말대로 별로 심하지 않으면 약을 소량 써도 되니까 오히려 좋은 거고 내가 원하는 대로 상담하지 않고 약물만 처방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또 내 이야기를 하는 게 힘들다면 굳이 그런얘기 하지 않고 증상위주로만 설명하는게 좋을 것 같다며 동네 내과가는 것과 똑같다고 말해주었다. 친구의 말이 큰 위안이 되었고 조금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막상 말하려면 생각이 안날 것 같아서 메모장에 미리 증상을 기록해두었다가 상담 때 이야기했다.
내 증상은
1. 가슴이 답답함-일주일에 다섯 번, 몸이 안 좋은건지 정신적인 문제인지 모르겠음.
2.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침대와 함께 땅 밑으로 꺼지는 느낌-저녁부터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나고 2시간까지.
3. 몇 달 전까지 직장내괴롭힘으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은 환경인데도 아직도 이때의 악몽을 종종 꿈
4. 무기력해져서 집안일을 미룸-일주일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
5. 전화업무할때 가끔 문장을 듣고 바로 이해하는게 아니라 한참 뒤에 그 말을 이해함-일주일에 한 두번.
6. 한 달에 2주 정도는 아픈 편-이건 아주 어릴때부터 만성으로 몸이 약한 편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던 부분이었는데 우울증 증상일 수도 있다고 들어서 적었다.
7. 이틀에 한번 정도 죽고 싶다는 생각, 말을 함-중학교때부터, 사람이면 다 장난으로든 아니면 진심으로든 이런 생각을 하는줄 알았는데 건강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당일에는 신분증 검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서 신분증만 챙겨갔다.
병원에 가는 것 뿐인데 정신과는 왜 이렇게 장벽이 높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먼저 신분증 검사를 했고, 질문지 세 장 정도를 작성했다. 아마 우울감 정도를 측정하는 것 같았다.
대략 나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등 신체적 증상이나 정신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질문지였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검사 두 가지를 했는데 첫번째는 뇌파 검사였다. (정확한 검사 이름은 기억이 안남...당연함. 간호사 아님.)
머리에 10개정도 되는 줄을 두피 전체에 본드로 부착하고 15분동안 검사를 했다. (뒤에 약속 있었는데 중간에 미용실을 낀 스케줄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무 생각없이 눈을 감고 편히 앉아있으라고 하셨는데, MBTI 진성 N인 나는 '아무 생각? 아무 생각이 뭐지? 편하게 앉아있는 건 뭐지?' 같은 잡생각을 하며 불편하게 앉아있었다. 우울감 때문에 왔는데 서마터폰 중독자처럼 15분동안 인터넷 없이 맨정신으로 가만히 있으려니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검사가 끝나니 간호 선생님이 오셔서 검사결과를 뽑아가셨는데 꽤 여러장 뇌의 사진이 색색깔로 찍혀있었다.
그 다음엔 스트레스 민감성 검사(이것도 검사 이름은 잘 모르겠다.)같은 걸 했는데, 알록달록한 집게를 양 손목, 발목에 끼우고 5분~10분정도 가만히 있는 검사였다. 화면에는 세 가지의 파동이 계속 일정하게 나왔고(5분동안 다 똑같아 보여서 검사 결과에 아무것도 안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는게 너무 힘들어서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열심히 구경했다.
그렇게 약 30분만에 두 가지 검사가 끝났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러 갔다. 상담은 돈 내고 처음 받아보는거라 가격이 그렇게 비싼지 몰랐는데 20분에 4만원 정도였다. 간호사 선생님이 시간이 지날 수록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꼭 하고싶은 말만 하라고 당부하셨다.
진료실에 들어가 먼저 검사 결과에 대해 들었다.
우뇌, 좌뇌 중 어디가 더 활성화 되어있는지, 뇌의 기능은 어떤지, 에너지는 충분히 남아있는지, 불안감은 어느정도로 높고 예민한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고, 불안이 엄청 높은 편이라고 하셨다. (솔직히 이 대목에 차라리 다행이라고 느꼈다...문제가 있다는 건 해결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니까ㅠ...)
신기한 건 뇌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어, 과거에 뇌가 어떤 상태였는지까지 알 수 있다는 거였다. 몇 달 전 상태가 거의 재난 상황 수준으로 불안이 높아서 트라우마가 될 만한 사건이 있었냐고 물어보셨다. 어쩐지 사주를 보러 온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 때 전 직장에서 고통 받고 있던 시기라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는데, 그때는 너무 무기력해서 도저히 병원을 올 만한 힘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화두로, 메모해놨던 증상과 상황을 섞어 이야기했고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말이 술술나왔다. 그리고 얘기하면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흘렸다. 평소에 영화나 다큐멘터리 볼 때 우는 거 외엔 잘 울지 않는 편인데 희한한 경험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나보다 더 격하게 적절한 욕을 해주며(?) 맞장구 쳐주셨고, 만약에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 것 같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계속 피할 것 같다고만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지금은 긴장이 많이 되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약을 먹으면 좀 더 당당히 맞설수 있는 힘이 생길거라고 하셨다. (피하고 도망치는건 원래 그런 성향이라 과연 바뀔까? 싶기는 했다.) 그리고 자주 많이 아픈 증상 역시 우울의 한 증상이라고 하셨다. (병명은 정확히 말씀하시진 않으셨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흐르고(메모장에 적어놓은 것만 읽고 상황 설명만 간단히 했는데도 너무 오래걸렸다...) 진료실을 나왔다. 약을 3일치 처방해주셨고, 약을 잘 흡수되게하는 전두엽 자극하는 치료를 하고 비타민 D 주사를 맞고 가라고 하셨다.
전두엽 자극하는 치료는 TNR인지 뭔지 기억이 안나서 검색해보니 TMS라고 한다. (TNR은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뜻하는 말이었다;)
http://www.healthumer.com/news/articleView.html?idxno=3485
우울증 치료, 뇌 자극 방법으로 90% 효과 보여 - 헬스컨슈머
[헬스컨슈머]뇌 자극으로 우울증을 완화할 수 있는 치료법이 개발됐다.연구를 진행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연구팀은 자기로 뇌 심부를 자극하는 '경두개 자기 자극'(TMS: Transcranial Magnetic ...
www.healthumer.com
TMS는 커다란 샤워부스같은 걸 머리에 얹고 정형외과 물리치료하듯이 전기자극 같은걸 주는 치료였다. 이마 앞 쪽까지 자극이 돼야 제대로 치료가 된다는데 계속 그 부위까지 느낌이 안와서 점점 세기를 높였더니 누가 아프지 않을정도로만 딱밤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딱밤 느낌나는 치료를 20분동안 했다.
그리고 비타민 D 주사를 맞았다. 생각보다 아팠다. (화이자 백신보다 아팠음...)
평소에 비타민 D만 먹으면 소화가 잘 안돼서 애기들 먹는 젤리로 소량씩만 섭취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양의 비타민 D를 맞아서 그런가 이 날 하루종일 더부룩하긴 했다. 이렇게 드디어 모든 진료가 끝이났다...!
검사와 기계 치료, 비타민 D 주사는 거의 다 4만원쯤 했던 것 같고, 초진비는 병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약 20만원가량 나왔다. (이 부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간호 선생님이 초진비가 가장 비싸고 그 다음부터는 이정도로 많이 나오는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약 경과를 보기 위해 며칠 후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정신과는 맞는 곳을 찾기 어렵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좋은 경험으로 남아서 마음이 한결 편해진 느낌이었다. 혹시나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증상을 판단하고 고민하지 말고 한 번 방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