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유입이 대부분 정신과 초진 후기 포스팅인 것 같은데, 아마 계속 다니고 있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 하실 분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1년이 넘은 시점에도 계속 다니고 있고, 상태는 나빠졌다 좋아졌다하지만 아예 치료를 시작하기 전 상태만큼 나빠지진 않고 있다.
우울증약은 한 달동안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아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들 한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비용도 비싼데 효과가 없다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심리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정신과를 추천해주고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었기에 꾸준히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단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수면유도제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좋았던 상태와, 나빴던 상태를 비교해보자면
작년 9월즈음 문득 평소와 같이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가면서 '참 행복하다.'라는 생각과 말을 처음해봤던 것 같다. 마치 영화 '소울'에서 저승에 갔다가 시한부로 살아 돌아온 주인공이 햇살이 따스하게 나무를 비추고, 낙엽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며 인생은 참 아름다운 것이었구나를 깨닫는 그 순간처럼, 햇살이 참 따스하고 물결은 잔잔하고 더할 나위없이 좋은 날씨였으며 걱정이 없다고 느껴지는 단 하나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주 자연을 보며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 나에겐 전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빴던 적은 올해 3~5월이었다. 우울증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하는데,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해야할지 나 빼고 다 행복해보인다고 할지, 아니면 바이오리듬의 문제인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힘든 시기였다. 새로운 사람, 상황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나에게 각종(내기준)안 좋은 일이 겹친 시기였고, 트라우마처럼 남았던 기억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구직활동을 하던 시기였고, 몸도 안 좋았다. 살면서 위내시경을 한 것도 처음이었는데 위궤양 진단을 받았다. 몇 달동안 거의 밤에 안 깨는 날이 없었다. 두번은 일어나서 타는 갈증에 물을 벌컥벌컥마시고 다시 잠들면 악몽을 꿨다.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모르는 것처럼 빙빙 돌았다.
아마 정신과 선생님은 내가 오래 약을 복용하는 것이 신경쓰이셨는지 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하셨고, 하필이면 상태가 가장 안 좋을 때 검사를 해서 그런지 작년보다 더 안 좋게 나왔다.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여유로울 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조금 좋아진 건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나, 트라우마로 남았던 기억이 줄어들었다는 것 정도. 그래서 오히려 약은 증량했다.
약을 증량하는 것에 대해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아파서 약을 복용해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이진 않았다. 약을 먹을 때는 항상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되뇌인다. 감기에는 항히스타민제를, 우울증에는 세로토닌을, 약은 약사에게.
그래서 결론은 안 좋아졌단 것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장기적인 그래프로 봤을 때 아직도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안 좋았을 때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알콜 중독자처럼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에 들 수 없었고 장소와 시간에 맞지 않게 눈물이 후드득 떨어질 때가 있었고, 심장이 마구 뛰었으며, 누구를 만나도 불안하고 내 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버는 실패한다! 끔찍한 직장을 만났을 땐 어서 도망가는게 상책)
나의 우울증의 원인을 찾자면 밑도 끝도 없지만, 사실 가장 큰 건 부모님의 영향이기 때문에 독립을 하지 않는 이상 완전히 치료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허약체질인 사람이 혼자 독립하여 내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떻냐고 하면 중간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고 안 만나면 소외된 것 같아 외롭다. 가끔 나의 장례식장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그래도 남은 인류가 변해가는 기후환경에 잘 적응해 잘 살아남으면 좋겠지만 이대로 멸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60까지 적당하게 살다가 죽고 싶기도 하고, 모아 놓은 개인연금을 못받으면 억울할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종종 후기를 남기려고 한다. 이 포스팅을 읽은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대답은 예스다. 무조건 가세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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